일상잡설

넷플릭스 D.P.

Noobgosu 2021. 10. 4. 00:47

감수성 풍부한 중학생 소년으로 하여금 부조리라는 것에 대하여 깊은 고찰을 하게 만든 것은 어른이 되면 군대에 가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사 부조리의 총 집합체인 전쟁, 그리고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집단인 군대
결국 나는 군대를 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남성들의 신경증과 트라우마를 나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일까
결국 나는 군대를 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군대에 가있거나 최근에 전역을 한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동안 드라마틱하게 변한 군대의 모습이 들을 때마다 놀랍다
내가 자라오면서 듣고 배운 군대의 모습은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이 무시되고 그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곳이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세상에 상식이나 논리, 합리성 따위에 기반해 돌아간다는 순진한 사고방식을 고쳐주는 곳이었다
그러기에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줍잖은 청춘의 발칙한 낭만이나 설익은 포부 따위는 픽하고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집단이
2014년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마구마구 변하게 되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군대에 대부분 가고 난 직후였다
물론 나는 군대라는 곳이 끔찍이도 싫었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제멋대로 길들여 놓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안 가고 있었더랬다

나의 자아 형성과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크나큰 공포가
시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를 괴롭게 하던 그 공포는
더 이상 현재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