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면 카스트를 떠올리는 당신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인도하면 카스트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이 카스트를 현대판 신분제도 쯤으로 이해하며 그러기에 '카스트제도'는 전근대적 악습의 상징, 왜 철폐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 미개함의 증표 등으로 사람들의 언어 속에서 표현된다
"왜 저 나라는 아직도 카스트제도를 철폐하지 않지?"
"인도는 아직도 카스트가 존재하는 미개한 나라"
"조선이 개항을 더 늦게했더라면 우리나라도 아직 인도의 카스트 같은게 있겠지?"
비정규직을 보면서 카스트 제도를 떠올렸다는 이 기사는 사람들이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해를 잘 드러내고 있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0729
기자는 우리나라의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정치인을 인도 카스트 제도의 성직자 계급 브라만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숱한 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수드라 계급에 비유한다
그는 '카스트 제도라는 독특하고 잔인한 법칙이 통용되는' 나라와 우리나라의 현실이 다를 바가 없다면서 비정규직도 엄연한 이 나라 국민임을 성토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회경제계급과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대응시킨 저 비유가 과연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정말로 카스트 제도가 인도만의 '독특하고 잔인한 법칙'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인도의 카스트에 대해 가치평가를 내릴 만큼 난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인도의 카스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신분제도 또는 사회계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 개념은 정말 방대하고 복잡하다
일단 카스트라는 말은 혈통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단어 casta에서 유래한다
포르투갈어 단어가 영어로 유입되어 caste가 되고, 후에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인들이 인도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카스트라는 단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구분은
varna라고 하는데 이것은 힌두교의 종교적인 개념에서 사람들을 성직자부터 시작해서 네가지로 크게 구분한 것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불가촉천민은 아예 이 구분에 들어가지 않는다(이 구분 밖에 벗어나는 사람들이 전부 다 불가촉천민은 아니지만 더 들어가면 머리아파지고 아무도 안읽을테니 이쯤하자)
네가지 varna 분류로 카스트가 끝일거라고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 만만의 콩떡
인도인들의 실생활에 좀더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되어있는 카스트 구분은 jati라고 하는데 jati는 수천(...)가지로 분화되어있다
인도인들이 영어로 얘기하면서 자기네 community 어쩌고 저쩌고 그런 얘기를 할 때 그 '공동체'가 jati다
jati는 그 공동체의 직업/가업과 연관된다
흔히 사람의 성을 보면 그 사람의 jati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간디의 경우 간디라는 성이 향수 상인이라는 jati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varna와 jati의 구분은 독립적이면서도 어느정도 서로 겹치는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당연한 얘기)
그런데 1901년 영국이 행정의 편의를 위해서 수천개의 jati들을 varna의 하위 분류로 취급하여 카스트 시스템 통합을 이루게 된다
그 분류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바르나고 자띠고 영국이고 나발이고 어쨌든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 신라 골품제나 조선시대 양반 천민 하던거랑 뭐가 달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매우 다르다
흔히 상상하듯이 카스트가 높다고 상류계층, 카스트가 낮다고 하류계층이 되지않는다
성직자 가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도 현실은 변변찮은 직업 못구하는 백수일 수 있고
낮은 카스트 출신의 사람이 출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우타르프라데쉬 주의 주지사를 지냈던 Mayawati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흔히 '불가촉천민'이라고 표현되는(좋지않은 표현이다) Scheduled Caste 출신이다
위의 사례는 이옥순 교수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는데 인도를 여행하다가 카스트제도와 현실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불일치에 대해서 실제로 경험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인도 중서부 차티스가르 주의 Konta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열흘간 머물렀을 때 신세지던 집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집주인 아저씨가 있고 세들어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집주인 아저씨는 그 마을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는데 힌두교 공부를 워낙 열심히 하셨고 마을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탓에 카스트로 따지면 성직자 계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크고작은 종교의례를 주관하시기도 하셨다
세들어사는 사람들 중 딸 둘을 홀로 키우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작고한 남편분께서는 성직자 계급이지만 성실하지 못하여 집안 살림에 큰 도움도 못 주고 술에 취해 자전거를 타다가 하전에 빠져서 돌아가시는 변고를 당했다는 안타까운 사정이 있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하위 카스트 혹은 부족민들을 우대하기 위해 여러 우대정책을 편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대학입시에서도 최소 몇퍼센트는 하위 카스트나 부족민들을 채용해야한다는 식으로 할당을 놓는데 그 비율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오히려 카스트가 낮은게 이득이라고 역차별이라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카스트에 대해서는 인도 내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카스트가 왜 존재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관점도 해석도 다양하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영국 식민지배의 산물이라는 사람들부터
아리아인들의 후손인 북인도인들이 남인도의 드라비다인들을 억압하는 수단이 바로 카스트라는 사람들까지
고작 내가 섣불리 뭐가뭐다 좋다나쁘다 말할 수 없게 정말 복잡하다
인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이고 단순히 지역에 따라서만 문화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 내에서도(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집안/커뮤니티/카스트에 따라서 언어, 음식, 신앙, 심지어 얼굴 생김새 등등이 다른 것이 전혀 놀라울 것이 없는 나라다
그런 복잡성을 무시하고서 "그래도 카스트는 좀 아닌듯"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다
인도사람들이라고 카스트 너무좋아 카스트 다이스키하는것도 아니고 아무리 오래된 전통이라고 하더라도 카스트구분이 가지는 문제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깐, 그래서 인도 정부도 소외된 이들을 처우개선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거고
그러나 적어도 카스트를 현대판 골품제 쯤으로 잘못 알고 말을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