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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설

좀 나댑시다

예전에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그 친구가 자신은 "성소수자 편견없다"면서 "근데 요새 너무 나댄다, 그것 때문에 좀 비호감"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듣고 순간적으로 표정관리 하느라 혼이 난 적이 있다
슬슬 나이를 먹으면서 이성애자 코스프레 하는 것에 피로감이 쌓여가고 그냥 확 주변에 다 말해버릴까 싶다가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커밍아웃 안 하길 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 동기의 동성애는 정신병이라는 발언에도 별 타격없었던 나인데 성소수자들이 너무 설친다는 말은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신선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LGBT중에 커밍아웃하고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대부분은 이 악물고 이성애자 코스프레 하고 사는데 우리가 언제 나댔지?
생각하다보니 알 것도 같다
그런 반응 어디서 많이 봤다
차별금지법 이라던지 퀴어페스티벌 관련 기사에 꼭 달리는 댓글
성소수자를 존중은 하지만 자기네들끼리 조용히 살면 될 것을 굳이 왜 인정을 강요하냐고, 없던 거부감도 생기게 만든다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해본 적도 없으며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른다
전형적인 내 인생 살기 바쁜 소시민 게이
나같은 부류가 아마 대다수일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열심히 하고 그런 소수의 우리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 존재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거북해하고 오바해서 나댄다고 생각하니깐 제발 너네도 좀 입다물고 얌전히 있으라고 하는 게 맞을까?
시벌 그게 정답일리가 있겠냐고
내가 아무리 뒷짐지고 조용히 꿀이나 빠는 존재지만 나 대신 이리저리 힘써주고 목소리 내주는 사람들까지 아니꼽게 볼만큼 양심없지는 않다

고작 해봐야 일년에 한번 축제열고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조항 넣어달라는게 나대는거라면
더 나대도 좋을 것 같다
그게 나대는 거면, 그 사람들은 우리가 뭘해도 나댄다고 싫어할 사람들이다
성소수자 존중한다느니 편견없다느니 순 개뻥이다
게이면 뭐 존나 숨죽여서 눈에 안띄게 살살 기어다니면서 살아야 되냐고
레즈여도 마찬가지고 바이여도 트랜스여도 마찬가지
우리는 그냥 가마니처럼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데 그 숨소리조차 거슬린다는 인간들 눈치까지 본다면 그건 너무 슬프잖아
언제까지 미운털 박힐 걱정만 하면서 살거야
오히려 가끔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소리도 내보고 질러도 보고 그래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