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중국여행을 갔던 때가 기억난다
그 때는 지금보다 중국이 덜 발전되어 있기도 했고 중국에 갔다와본 사람이 지금보다는 적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온갖 괴소문들이 파다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그러했다
중국에 가면 큰일난다고 중국인들은 한국인 장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장기매매 타겟이 되기 쉽다고
혹은 신혼여행으로 중국에 갔다가 아내가 납치되고 몇년뒤 하반신이 잘린채 앵벌이를 하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까지
별의 별 이야기들이 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정말 조마조마하면서 다녔다
혹시라도 누가 내 장기를 채가진 않을까 납치되어서 앵벌이를 당하진 않을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시골에서 5위안 짜리 우육면을 사먹었다가 기차안에서 배가 아파 혼줄이 나거나
왕푸징에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던 누나에게 넘어가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카페에 들어간 적은 있어도
오히려 사방에 공안이 깔려있는 국가여서 꽤 안심하고 다녔다(내가 국민이었다면 답답했겠지만 여행자 입장에선 나쁘지않았다)
예전만큼 중국에 대한 잔인하고 엽기적인 소문들은 들리지않지만 인터넷 상에서 남들보고 가지 말라고 말리는 나라가 또 있다
바로 인도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가면 안된단다
인도는 강간이 일상인 나라고 여자들에게 위험하니 가지 말란다
여성분들 해외여행 환상 가지고 인도 갔다가는 큰일 난단다 한비야가 여자들에게 헛된 로망을 주입시켜놔서 순진한 여자들이 멋모르고 해외 나갔다가 범죄에 노출이 된단다 (이런 발언에서 느껴지는 미소지니는 일단 그냥 넘어가자)
나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여성여행자들을 만났고 종종 물어보기도 했다
여자로 인도 다니는게 어떠냐고 힘들지 않냐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불편하거나 성가신 점이 간혹 있지만 다닐만 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가 하필 만족스럽게 여행중인 사람만 골라서 물어봤을 수도 있다
여성 여행자의 대부분은 인도 도착하고 3일만에 너무 별로라서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이미 범죄의 희생자가 되어 내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 미세한 확률을 뚫고 안전하게 여행중인 사람들만 하필 내가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인도 여행 가지말라며 기를 쓰고 고함을 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불쾌하다
왜일까
유튜브에서 <인도 여행>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영상들
다 그런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영상들이 <인도의 민낯>, <인도여행의 실체>, <인도 이렇게 더러운거 놀랍지도 않아>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물론 자극적인 썸네일, 자극적인 내용이 유튜브 조회수를 높인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쾌하다
어떤 영상은 정말 가관이다
<가지말라는 인도는 왜들 그렇게 가는지>라는 제목의 영상은 영상 소개란에 이렇게 적혀있다
혹시 갈려는 사람 가기전에 네이버에 그냥 “인도 강간” 딱 한번만 검색 해보고 다시생각 심지어 그 유명한 간디도 어린애만 골라서 강간
유튜브에 <인도 여행>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중 조회수가 매우 높은 편에 속하는 영상이다
인도 여행의 안전성을 언급하면서 간디는 왜 언급하였을까 (간디가 정말 '어린애만 골라서 강간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 글에서 논하지 않겠다, 일단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쓰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간디가 인도사람이라서 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간디라는 인물이 저럴진데 나머지 인도사람들이 어떻겠냐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그리고 얼마나 지독한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인도가 정말 위험한 나라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단순히 인도가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쾌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인도 사람도 아니고 그게 왜 불쾌하겠는가
인도 여행의 안전성을 논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왜 인도 여행의 안전성을 논하길 좋아하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악취를 나는 말하고 싶은것이다
<인도 여행>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영상 중 조회수가 만이 채 넘지 않는 한 영상이 있었다
제목은 <인도 몰 되게 좋다...?>, 인도의 쇼핑몰이 좋다는 내용의 영상인가보다
그런데 영상 설명란이 재밌다
+추가) 계속 영상에 인도가서 강간 못 당해서 정신 못 차렸냐,그러다 끌려가서 강간 당한다 이런 댓글들 자꾸 다시는데 저희가 위험한 곳을 가는 것도 아니구요, 정말 안전한 곳만 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도대체 무엇이 한국 네티즌을 저렇게 행동하게 만드는가
왜 한국 네티즌은 인도를 욕하고 폄하하는 영상들을 감상하며 댓글로 인도의 후진성을 고발하기를 즐기는가
왜 인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강간 못 당해서 정신 차렸냐며 답답해하는가
그냥 혐오가 즐겁고 재밌는게 아닐까? 우월한 선진국민 행세 하는게 좋은게 아닐까?
실제로 영상들을 클릭해서 댓글을 보면 상당수가 그런식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길 다행이다
여자분들 인도 가지 마십시오
인도여행은 유튜브에서만 하는 걸로
우리나라가 갑자기 너무 좋게 느껴진다
사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여성분들 인도여행 조심하세요가 아니다
인도를 여행한 남성 유튜버의 영상에도 다 저런 식의 댓글들이다
저들은 도대체 왜 인도 여행 영상을 보는 것일까?
인도는 어떤 나라며 어떤 문화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는 조또 1만큼도 관심 없고
그저 얼마나 쇼킹하며 얼마나 미개하며 얼마나 더러우며 얼마나 무법지대인지가 보고싶은 것 같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시대 서유럽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바라보던 방식이다
그 시대에는 유튜브는 없었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라는 비문명의 공간을 탐험하고 돌아온 유럽인들의 글과 그림이 인기였다 미지의 대륙에 대한 낭만적인 묘사와 더불어 그 곳에 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야만성과 비문명성을 맛깔나게 잘 묘사할수록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 추한 모습이 21세기 한국에서 이어진다는 것이 좆같다
그런 좆같은 의도로 좆같은 콘텐츠를 좆같이 소비하는 사람들도 좆같지만 더 좆같은 건 그들의 행태다
자신들과 함께 인도 비웃기 인도 까기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돌을 던지면서 인도 미화하지 말아라, 여자라면 강간 당해야 정신 차리냐, 남자라면 너 같이 환상 심어주는 애들 때문에 여자들이 가서 강간당하는 거라고 화를 내는 이들
대체 왜 남이사 어디를 여행가던 말던
무슨 샘물교회 처럼 국가에서 여행금지한 위험한 곳에 굳이 가서 선교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사 어디를 여행하던 대체 무슨 상관이냐
그리고 왜
누가 여행갔다오면 그 곳의 풍경과 문화와 풍습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곳이 얼마나 더럽고 위험하고 냄새나는 곳인지를 듣고 싶어하는가
아직 우리 사회가 미성숙한 탓인가 아니면 그게 아니고 지금 세대가 오히려 옛날보다 퇴보한 혐오의 시대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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