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어디를 갔다올 때 몇박며칠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누가 1박2일동안 어디를 놀러갔다왔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첫번째 날에 새벽일찍 출발해서 다음날 밤늦게 들어왔는가 아니면 오후 늦게 갔다가 다음날 점심 때쯤 돌아와서 실제로 여행한 시간이 24시간이 안되었는가와 상관없이 1박2일로 어디 좀 갔다왔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12월에 태어난 아기는 태어난지 한달만에 두살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셈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셈법이었다.
예전에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릴 때도 그랬다.
내가 저녁늦게 빌리던 어쩌던 간에 대여기간이 3박4일이면 3일 뒤에 가게 영업시간안에 반납을 해야하는 것이다.
요새는 아닌가보다.
예를 들어 올레티비에서 영화 일주일 대여를 하면 내가 결제를 한 시점으로 24시간 곱하기 7해서 딱 168시간이 흐른 후까지 그 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 식으로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정확히 어떤 기간의 길이의 정수 단위를 말한다기 보다는 그 단위를 세서 날수를 세던지 달수를 세던지 햇수를 세던지 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생활해왔다.
우리가 몇년도에 만났으니깐 우리가 알고지낸지가 벌써 햇수로 몇년이다 라는 얘기를 할 때 햇수로 '몇'에 들어가는 숫자는 발화의 시점이 몇월이냐에 영향을 받지않는다.
뭔가 셈을 하는 방식이 덩어리로 뭉텅뭉텅 하는 느낌?
그게 뭐 좋은지 나쁜지는 알거 없고 그냥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던 셈법이었다.
유독 이런 셈법이 공격받을 때가 나이 얘기를 할 때인데, 아무래도 외국에서는 이러한 식으로 나이를 세지 않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런듯 하다. 중국일본은 모르겠는데 유럽 언어권에서는 보통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날까지의 날들을 합치고 365로 나눈 정수 부분을 나이로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태어난지 1년째 되는 생일날부터 해서 매년 생일날 나이를 먹는 식이다.
뭐 한국식 나이가 구시대적인지, 나쁜지, 없애야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비록 나는 한국식 나이 셈법이 자연스럽다고 느껴지고 애착이 가지만 사람들이 원하는게 만나이라면 그런 흐름에 맞게 바뀌는 것이 순리겠지.
내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한국식 나이 셈법을 좋아하던 반대를 하던 그거야 제각기 생각이 다른 것이므로 그냥 그렇구나 싶지만
한국식 나이 셈법에 대해서 사이비식 설명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고 답답하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생명존중 사상 때문에 엄마 뱃속에서 산 시간까지 쳐서 태어난 아기는 한살이에요"
zㅣ랄도 이런 zㅣ랄이 없다
일단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전혀 없을 뿐더러 논리 자체도 허점투성이다.
저 설명은 한국에서 신생아가 왜 한살인지는 설명하지만 왜 생일날이 아닌 새해 첫날에 모두가 다 같이 나이를 먹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반쪽 짜리 설명이다.
그리고 누가 엄마 뱃속에 12개월씩이나 있다 나오나.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것을 외부에서 의문시할 때 그걸 설명하기 어려웠던 적이 누구나 다들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게 왜더라 하고. 너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여서 거기에 내재되어있는 논리가 바로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엉터리 설명을 내놓곤 한다.
특히나 외부에서 제기되었던 의문이 부정적인 억양을 띄고있었다면 더더욱.
혹은 외부의/제2의 논리에 익숙해져있던 상태에서 다시 기존의 논리를 바라보았을 때도 그렇다.
서양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독특한' 나이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생명존중 사상을 예찬하던 수필을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글에서 근대화가 진행되던 세상에서 우리 고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벌어진 어이없는 촌극을 목격한다.
아니면 뭐 비슷한 맥락에서 일본이나 중국에서 기존의 나이 셈법을 서양에 맞춰 태어난 아기는 0살인데 또 해가 바뀔때 나이는 먹는 우스꽝스러운 나이 제도 개편을 했는데 한국은 왜 다른가해서 한국이 이상한게 아니야!!라고 기를 쓰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던가 하는 가설도 세워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음....애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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